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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미래』(문학과지성사, 2011) - 이광호 1. 『사랑의 미래』(문학과지성사, 2011), 이광호 - 이런 것이 바로 시가 된 산문인가. 2.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늘 얼마간 머뭇거리게 된다. 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냥 '사랑'이라는 단어를 써야하는 상황만으로도 어색해지고 만다. 어쩌면 그 단어에 반응하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나는 사랑의 감정에 잘 휘둘리는 사람인데, 그런 나의 모습을 저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일까. 이광호 선생님의 『사랑의 미래』는 문지 웹진에서 먼저 읽었다. 꼬박 연재를 따라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어쩌면 '아는' 시)와 함께 연재된 글 들을 골라 읽었었다. 마음 먹고 쭈욱 읽어야지 생각하며. 좋아하는 선생님이고, 또 제목.. 2011. 11. 16.
비가 오려 할 때 - 문태준 나무 냄새 맡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시. 나무가 필요할 때. 비가 오려 할 때 비가 오려 할 때 그녀가 손등으로눈을 꾹 눌러 닦아 울려고 할 때 바람의 살들이 청보리밭을 술렁이게 할 때 소심한 공증인처럼 굴던 까만염소가 멀리서 이끌려 돌아올 때 절름발이 학수형님이 비료를 지고 열무밭으로 나갈 때 먼저 온 빗방울들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산을 펼 때 -- 문태준, 『맨발』, 창비, 2006 마음이 좀 "술렁"인다 싶을 때 찾게 된다. 괜찮아요. 아마도. 아마도지만, 괜찮아요. 2011. 11. 2.
『이인』- 알베르 카뮈 ('이방인'으로 더 잘 알려진)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서는 '이방인'이 아닌 '이인'의 제목을 달고 카뮈의 소설이 출판되었다. 처음에 제목을 보고 '내가 아는 이방인이 맞나?'하며 펼쳐 보았다. 작가와, 첫 문장을 읽고 맞구나 했고. '이인'을 달고(?)나온 이유에 있어서는 맨 마지막 역자의 해석 뒤 덧붙이는 말을 보자면 덧붙이는 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심심한 양해를 구한다. 알다시피, 지금까지『이인』은 '이방인'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이미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제목을 바꾼 것은 이 작품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옮긴이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뫼르소'를 '메르소'로 부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방인'이라는 제목에 어떤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독자들에게 뫼르소의 진정한 정체성.. 2011. 11. 1.
향기 - 이준규 1. 일단 이준규의 시 두 편. 향기 그것이 왔다 내일은 비가 왔다 비린 후회의 추억처럼 오늘은 마른 눈이 온다 벗은 살의 먼 기억처럼 거리를 지탱하고 사라지지 않는다 차를 한 잔 마시고 잊을 수 없는 것을 잊고 정교한 헛짓으로 번지는 벽 입을 다문 슬픔의 모습 그림자의 순간을 견디는 그림 없는 그리움 실패의 구축에 실패하다 완전한 망각을 권유하는 향기 그것이 왔다 -- 이준규, 『흑백』, 문학과지성사, 2006 "내일은 비가 왔다" "내일"인데 비가 "왔다"라니. "실패의 구축에 실패하다" 실패도 실패하는 것. 읽고 나서, 뭔가 '아...어떻게 이렇게 쓰는 걸까.'하며 주눅들게 된다. (......) 등단작이라는 하나 더. 자폐 누군가 나의 머리 잘린 꿈을 들여다보았다 햇빛의 유혹쯤이야 테니스공처럼 피.. 2011. 10. 31.
낯선 땅에 홀리다 - 김연수 외 (브라더 증정 도서) 얼마 전에 브라더가 줬던 『낯선 땅에 홀리다』김연수 외 (마음의 숲, 2011)를 읽었다. 여러 작가들이 각자 자신들의 여행기를 실은 건데 '문인들이 사랑한 최고의 문학 여행'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책이다. (글을 쓴 작가는 이름 순으로 김연수, 김중혁, 나희덕, 박성원, 성석제, 신현림, 정끝별, 정미경, 함성호, 함정임이다.) 거의 대부분이 익숙한 작가들이어서 각 작가의 챕터마다 그들의 목소리로 바뀌어가며 들렸다. 왠지 김연수 아저씨는 정말 김연수 아저씨스러운 목소리가 들렸고, 이어지는 김중혁 작가는 정말 또 김중혁 작가스럽게 목소리가 다가온다. 김연수 아저씨 부분에서 웃겼던 부분 갑자기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만난 대학생이 생각났다. 한국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고 싶다고 내게 말했던, 그 스페인문학 전공.. 2011. 10. 29.
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가을맞이. 가을 시라면 가을 시. 개 같은 가을이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廢水)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81 나의 졸업논문주제 시인이기도 하였던 최승자시인.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 2011. 10. 29.
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또!) 1. 형철 님 얘기는 요새 진짜 많이 쓴다. 그만큼 내가 아끼고 아끼고 있는 분. '책머리에'에 반했던 것처럼, 의 엄청난 '책머리에' 소개. (* 강조는 내가) "사랑할수록 문학과 더 많이 싸우게 된다. 사랑으로 일어나는 싸움에서 늘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는 잘못을 저지른 쪽이 아니라 더 많이 그리워한 쪽이다. 견디지 못하고 먼저 말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 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진다. 나는 계속 질 것이다." (12쪽) 윽. 계속 질 것이다. "원고를 1년 넘게 붙들고 있다보면 이따위 책은 내지 않는 게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몇 번은 온다. 그럴 때마다 손을 잡아주는 편집자가 곁에 있다는 것은 그 책의.. 2011. 10. 28.
낙화유수 - 함성호 함성호 시인의 시는 가끔 뭔가 너무 전위적(?)이기도 해서, 날 놀라게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왠지 좋은 시인. 좋아하는 시인의 남편(!)이기도 하다. ('마음산책'출판사에서 나온 『마음사전』을 쓰신 김소연 시인의 남편) 덜 전위적(ㅋㅋ)이고, 좋아하는 시. 낙화유수 네가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우리의 옛 맹세를 저버리지만 그때는 진실했으니,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거지 꽃이 피는 날엔 목련꽃 담 빝에서 서성이고, 꽃이 질 땐 붉은 꽃나무 우거진 그늘로 옮겨가지 거기에서 나는 너의 애절을 통한할 뿐 나는 새로운 사랑의 가지에서 잠시 머물 뿐이니 이 잔인에 대해서 나는 아무 죄 없으니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걸, 배고파서 먹었으니 어쩔 수 없었으니, 남아일언이라도 나는 말과 행동이 다르니 단지, 변치 .. 2011. 10. 23.
『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1. 무려 '몰락'의 '에티카'라니. 출간 순으로는 『몰락의 에티카』가 먼저지만『느낌의 공동체』에서 신형철 평론가를 먼저 만나서 읽고 있다. 사려깊은 개그욕심에 반하며! 정말 좋아하면서 읽고 있음. 『느낌의 공동체』는 산문이고, 『몰락의 에티카』는 평론이다. 과제 아니고서 평론을 읽는 건 아마 국문과생인 나에게도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다. 특정 좋아하는 평론가(이광호 선생님 같은)의 글을 계간지 등에서 '우연히'마주 쳤을 때나 정말 좋아하는 작가의 평론일 경우를 제외하면. 하지만 신 평론가의 글은 일부러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글. 어디서 봤더라, 신 평론가 글은 김현 선생님처럼 평론이 이렇게 스스로의 문체를 갖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아, 김현 선생님의 글도 좀 더 읽어봐야 겠.. 2011. 10. 20.
<변신> - 프란츠 카프카 1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벌렁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약간 들자, 활 모양의 각질로 나뉘어진 불룩한 갈색 배가 보였고, 그 위에 이불이 금방 미끄러져 떨어질 듯 간신히 걸려 있었다. 그의 다른 부분의 크기와 비교해 볼 때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앞에 맥없이 허위적거리고 있었다. (9쪽)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벌레로 변해있다면. '가족'은 완전한가. 예전에 수업에서 선생님은 '가족'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운명적으로 부여받은 것이기 때문에 더 폭력적일 수 있다고 하셨다. 내가 애써 선택한 것에도 불만족과 혼란이 올 수 있는데, '가족'은 바꿀 수도.. 2011.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