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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빠진 독서

『사랑의 미래』(문학과지성사, 2011) - 이광호

by 두번째낱말 2011. 11. 16.

1. 『사랑의 미래』(문학과지성사, 2011), 이광호
 
- 이런 것이 바로 시가 된 산문인가.

2.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늘 얼마간 머뭇거리게 된다. 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냥 '사랑'이라는 단어를 써야하는 상황만으로도 어색해지고 만다. 어쩌면 그 단어에 반응하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나는 사랑의 감정에 잘 휘둘리는 사람인데, 그런 나의 모습을 저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일까. 

이광호 선생님의 『사랑의 미래』는 문지 웹진에서 먼저 읽었다. 꼬박 연재를 따라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어쩌면 '아는' 시)와 함께 연재된 글 들을 골라 읽었었다. 마음 먹고 쭈욱 읽어야지 생각하며. 

좋아하는 선생님이고, 또 제목이 멋있었다. '사랑'의 '미래'라. 애써 외면하고 싶어도 어떻게 어떤 형태로든 맞닥들이게 되는 것이 사랑 아닐까. 사랑 안에 있어도, 혹은 그렇지 않아도 왠지 사랑에 있어서는 늘 '미래'를 꿈꾸게 된다.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인지, 사랑에 있어서는 지금 보다 더 나은, 지금 보다 더 행복한 것을 생각하게 된다. 아마 이런 건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애정을 주기 시작함과 동시에 슬퍼지는 나의 특성 때문일지도. 

작가의 말에서 보면,

극단의 공허는 최선의 위로만큼 표현되기 어렵다.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사랑이 하나의 관념으로 요약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래도 사랑이 다시 시작되는 일은 피할 수 없다고 말하기 위해, 이토록 어눌한 언어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부끄럽다. (10쪽)

사랑은 불가능하고, 또 하나의 관념으로 요약되지 않지만, 사랑이 다시 시작되는 일은 피할 수 없다고 한다.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늘 이렇게 불가피한 사랑에 대해서 '그'와 '그녀'의 모습을 통해 이야기한다. 그의 시간 속이 반, 그녀의 시간 속이 반이다. 이렇게 그의 시간과, 그녀의 시간을 흘려 보내고 나면 '이제는 그대 흔적을 찾지 않고'로 넘어간다. 알 수 없어 어찌할 수 없었던 그와 그녀의 시간은 결국 "찾지 않"는 시간에 도달한다. 

3.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면 보통 밑줄을 긋는다.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거나, 아니면 문장에 담긴 이야기를 닮고 싶을 때. 이 책은 너무 많은 부분에 밑줄을 긋고 싶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시였고, 감각이었다.

가령 이런 것들.

몇 그루의 나무를 지나친 뒤 서로의 손을 깍지 꼈을 때, 그들의 손가락은 서로의 손등을 감싸기 위해 조금 길어졌다. (35쪽)

사랑에 관한 모든 이미지는 고독하다. '나'는 언제나 그 풍경의 바깥에 있다. (53쪽)

어떤 날카로운 상실감도 하나의 주기가 끝나면, / 시시하고 희극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121쪽)

사랑을 잃는 것은 '나'를 부르는 하나의 특별한 억양을 잃는 것. / 그 억양이 존재했었다는 기억만, / 어떤 습기가 있던 자리의 얼룩이 되는 것.(132쪽)

그 모든 사소한 순간들을 기억하는 것은 부질없지만, 어떤 이미지는 쉽게 소화되지 않는 음식처럼, 몸 안에 오래 머물러 있다. (149쪽)

사랑에 관해 생각할 때는 자꾸 '엇갈림'이 생각난다. 사랑의 비극은 그 비동시성에 있다는 좋아하는 소설에서처럼 엇갈린 타이밍에서 사랑은 비극으로 긁혀간다. 

그해 10월, 그들은 함께 있었지만 서로에게 위로받은 순간은 같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우연한 눈빛과 그 사람의 우연한 말과 그 사람의 우연한 몸짓에 위로받는다. 정작 그 사람은 위로와 매혹의 순간을 모른다. 위로의 과정도 고독한 것이다. (164쪽)

이렇게 서로 모르게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위로를 던저야 하는 '우연한' 타이밍은 늘 맞는 것은 아니라 엇갈리게 된다. 사실 너무도 다른 둘이 이렇게 우연히 맞는 다는 것 또한 너무도 우연한 일이다. 이 우연처럼 참 많이 다른 "불면증에 시달리는 남자"와 "하루 10시간 이상 잠을 자야 하는 여자"는 '어떻게든' '우연히'만나 서로를 사랑하며 위로를 던진다. 

사랑의 최초 단계는 그 사람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는 것이다. (219쪽)

사랑을 말에 많이 담는다. 나는 지금 너를 사랑하는데, 나의 이 말을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그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담아 발화를 시작한다. 나의 말이 너에게 닿기를 바라며. 하지만 이 사랑의 말은 "언제나 이기적이고 무력하다(219쪽)". 왜.
사랑을 언어로 어떻게 정확히 담을 수 있겠느냐, 라는 문제. 그리고 사실 그 발화는 너를 향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라는 희한한 아이러니. 그러니까 어쩌면 너에게 사랑을 말하는 순간 '너'가 아닌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기적이고 또한 무력한 것이 아닐까.

4. 
두 가지 종류의 연인들이 있다. 너무 일찍 만난 연인들과 너무 늦게 만난 연인들. (235쪽) 

너무 일찍 만나 서툴러서. 아니면 너무 늦게 만나 이미 지쳐서. 어찌할 수 없는 만남의 시간을 거슬러 결국은 맞물려 만나게 된다. 어느 순간은 돌이킬 수 없을 수도 있고, 또 어느 순간은 그것이 찰나일지라도 꿋꿋한 흉터처럼 남기도 한다. 

철저히 '그'와 '그녀'의 '사랑'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 '미래'라고 했지만, 어제와 오늘의 '그들'을 모두 포함하는 '사랑'의 이야기. 

에필로그의 부분.

사랑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사랑의 미래를 향해 떠날 수 있다. 어떤 희망도, 어떤 목적도, 어떤 대가도, 어떤 이름도 없이. '내'가 살아가야 할 세계가 어딘가에 남아 있고, 그 하늘의 늙은 그림자 아래서 '당신'이 늦은 아침밥을 먹고 있다면, '나'도 한 숟가락의 밥을 뜨고 다시 길을 나설 수 있다. (237쪽)

사랑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랑의 미래를 향해 떠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에 어떤 의미도 무겁게 부여하지 않고 '우리'로서만 존재하려 한다면 조금은 '사랑의 미래'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그게 '당신'과 '나'이든 혹은 '같이'든.

책을 읽고 난 다음 나의 이야기를 한 느낌이다. 여전히 서툴고 어쩐지 쑥스럽다. 문장들을 쓸어 내리며 가을을 생각했다. 꽤 풍성하고 무력한 계절이라고 생각했다. 겨울이 오고 연두색이 위압적으로 느껴지는 봄이 올 때쯤, 그 어떤 사랑이든 약간의 미래를 기다린다. 그때 되면 좀 나아질까 싶은 나에 대한 나의 사랑도, 또 무언가에 대한 사랑도. 결국 나도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사랑'의 '미래'에 기대는 사람. 그러니, 계속 이 사랑의 언어들을 붙들고 있을 것이다. 아닌 척, 몰래. 




+ 이 글은 문학과지성사의 블로그에서 『사랑의 미래』서평단에 지원하여 쓴 것입니다.
꼭꼭 읽고 싶어서 지원하고 당첨돼서(!)책을 받아서 쓴 것입니다.
(저는 파워블로거는 전혀 아니지만.....적어놓습니다...)



사랑의미래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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