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맞이.
가을 시라면 가을 시.
개 같은 가을이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廢水)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81
나의 졸업논문주제 시인이기도 하였던 최승자시인.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이 부분 읽을 때가 가장 힘들다.
너에게
마음은 바람보다 쉽게 흐른다.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지다가
어느새 나는 네 심장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이 되고 싶다.
-- 최승자, 같은 책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진다라든가, "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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