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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들 - 심보선 심보선의 새 시집. 발문이 진은영 선생님이다. (무려!) 나날들 우리는 초대장 없이 같은 숲에 모여들었다. 봄에는 나무들을 이리저리 옮겨 심어 시절의 문란을 풍미했고 여름에는 말과 과실을 바꿔 침묵이 동그랗게 잘 여물도록 했다. 가을에는 최선을 다해 혼기(婚期)로부터 달아났으며 겨울에는 인간의 발자국 아닌 것들이 난수표처럼 찍힌 눈밭을 헤맸다. 밤마다 각자의 사타구니에서 갓 구운 달빛을 꺼내 자랑하던 우리. 다시는 볼 수 없을 처녀 총각으로 헤어진 우리. 세월은 흐르고, 엽서 속 글자 수는 줄어들고, 불운과 행운의 차이는 사라져갔다. 이제 우리는 지친 노새처럼 노변에 앉아 쉬고 있다. 청춘을 제외한 나머지 생에대해 우리는 너무 불충실하였다. 우리는 지금 여기가 아닌 곳에서만 안심한다. 이 세상에 없는 숲.. 2011. 10. 6.
사슬 - 이성복 꾸벅꾸벅 너무 졸린데, 일찍 자려고 했는데 또 세 시다. (.....) 이것만 적어놓고 자야지. 얼마 전에 사슬을 생각했다. 그 전에 그네를 생각했고, 그네를 생각하다 그네의 사슬을 생각했다. 아니면 사슬을 생각하다 그네를 생각했던 것일 수도. 내가 가장 가까이 떠올릴 수 있는 사슬이니까. 시간과 시간 사이에, 시간과 사람 사이에 놓인 사슬들을 좀 생각하다가. 사슬을 생각할 때 '사슬 시가 있었는데 뭐였더라' 하며 정확히 못 떠올렸었는데, 읽다가 만났다. 사슬 내가 당신 속으로 깊이 들어갔을 때 나는 아직 당신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웃는 것 같았고 우는 것 같았고 온갖 슬픔과 기쁨이 하나로 섞인 그 소리는 나의 머리끝 발끝을 끝없이 돌아나갔습니다 그 소리에 잠겨 나도 당신도 잊혀지고 헤아릴 수 .. 2011. 10. 6.
쓰다 열심히 쓰다보면 시인 되나! 쓰는 거 익숙해지고 싶어서 계속 열심히 쓰려고 하는데. 아 이거 여기에 쓰고 쓰고 또 쓰다보면, 시인 되기 전에 파워블로거부터 되는 거 아닌가.....생각이.... 글아 늘어라! (개수만 늘지 말고) 2011. 10. 6.
<생명연습> - 김승옥 (1962) 김승옥 소설가의 등단작.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 』(문학동네, 2011)에서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대 불문과 60학번 김승옥이 있었고 같은 학교 독문과 60학번 이청준이 있었다. 둘 다 문학을 사랑했고 또 둘 다 가난했다. 1961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다음 학기 등록금이 걱정되었던 김과 이는, 김의 주도 아래 이런 작당을 한다. 우리 신춘문예에 한번 덤벼보자. 까짓거, 한국 문학 별거 있냐. 붙는다. 붙으면 그 상금으로 다음 학기 등록을 하고 혹여나 떨어지면 미련 없이 입대하자. 아니나 다를까, 김승옥은 1962년 1월 1일자 한국일보에 등단작 「생명연습」을 실었다. 이청준은? 입대했다. (309쪽) (후략) 마지막의 "이청준은? 입대했다." 에서 나도 모르게 "푸학"하고 .. 2011. 10. 5.
잘 알지도 못하면서 - 김민정 도서관 열람실에서 읽다가 빵(!) 터져서, 입술을 깨물고 읽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광어를 회 뜨다 손을 떠버린 엄마 응급실로 데려가 침대에 누이는데 담당 의사 이름이 글쎄 '김근'이시다 어머, 뿌리 근을 쓰시나요? 성함이 제가 아는 분이랑 같아서요 그는 바느질로 바빴다 시인 중에 있거든요, 金根이라고…… 바느질로 바쁜 그는 아무 말 없었고 그런 말이 있었다, 비호감이라고 -- 김민정,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2009, 문학과지성사 아무 '말' 없는 그에게 '비호감'이라는 '말'을 선물하여, 그는 이제 '비호감'이라는 말이 있는 '어쩌면 뿌리 근' 남. 그녀가처음느끼기시작했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지은이 김민정 (문학과지성사, 2009년) 상세보기 2011. 10. 5.
? 익숙해지는 것. 물음표를 보면 자꾸 궁금해 해야하고, 마침표를 보면 더 이상 말을 못 하겠는 거. 느낌표가 많으면, 글인데도 불구하고 시끄러운 게 참 신기하다. '야!' 와는 달리 '야!!!!!!!!!!!!' 는 너무 크게 들려. 언제부터 이렇게 읽게 된 걸까. 이런 것도 글자처럼 배우게 된 건지. + 그런데 말들이 참 예쁘다. 요새 이런 낱말들을 빤히 보는 게 재밌다. 마칠 때는 마치니까 마침표. 쉴 땐 쉼표. 물어볼 땐 물음표, 느낌이 '짠'하고 오면 느낌표. 어디어디서 따왔을 때는 따옴표! 나는 따옴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따왔기 때문에 따옴표라는 걸 얼마 전에 인지했다. 예쁘게 만들어진 말들. 2011. 10. 4.
방청소 1. 올해의 마지막 방청소, 라고 말했지만, 12월 즈음에 한 번 더 할 것 같긴 하다. 방청소까지 가는 단계. 1) 웬만큼 깨끗할 때. 책상과 바닥까지 마음 껏 쌓아두며 지낸다. 조금 쌓인 것은 금방 치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드니까! 2) 좀 쌓였을 때. 짐이 없는 방바닥 부분을 골라가며 밟고 다닌다. 가방같은 거 여러 개가 바닥에 깔려 있을 때 요리조리 잘 피해가며. 3) 많이 쌓였을 때. ....밟아도 되는 것(밟아도 고장 안 나는 것)은 그냥 밟고 다닌다....... 뭐 이렇게 쓰면 엄청 더러워 보이나....아 막 엄청 더러운 건 아니고(변명 중), 책이랑 프린트랑 이런 게 막 쌓인다. 바닥에도 책상에도. 아무튼 이렇게 꾸물거리다 드디어 방청소를 시작. "저번 방청소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데,.. 2011. 10. 3.
달이 아주 얇고 노랗고 예쁘게 떴다. '이렇게 예쁜 달은 처음인 것 같아!' 하며 (이전의 기억은 다음의 강렬함이 오면 이렇게 쉽게 지워지는가. 난 이전에도 이런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기억은 안 나지만.) 담고 싶은 마음에 카메라버튼을 누른다. 눈보다 더 잘 담을 수는 없는가. 두 개의 눈을 거쳐 달은 더 작아지고, 나는 더 잘 보고 싶어서 카메라를 보며 가까이 다가간다. 몇 발자국 걷다 멈칫. '아, 내가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지.' 그래도. 또, 걷는다. 아주 낮게 뜬 달. 바람이 불고, 달냄새를 상상하게 된다. 2011. 10. 3.
푸르다. 푸르다. 인조잔디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좋아서 계속 보게 되는 사진. 2011. 10. 3.
쉽지 않다. 어딨겠어. 2011.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