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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빠진 독서

바오밥의 추억

by 두번째낱말 2011. 8. 21.

[리빙포인트]
마음이 불안할 땐 좋아하는 시를 옮겨보면 좋다. 

마종기 시인의 <바오밥의 추억>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문학과지성사, 2006)


<바오밥의 추억>


왜 그렇게도 매일 외울 것이 많았던지
밤샘의 현기증에 시달리던 나이,
큰 바오밥 나무를 세 개나 그려
소혹성 몇 번인가를 가득 채워버린
그 그림 무서워하며 헐벗은 날을 살았지.

그 후에 가시에도 많이 찔리고
허방에도 많이 빠지고 
녹슨 못을 잘못 밟아 피 흘리면서 
창피한 듯 눈치껏 피해만 다녔지.
나는 그렇게 살아냈어. 너는?

하느님이 제일 처음 심었다는 나무,
뿌리가 하늘을 향해 물구나무선 채로
늙은 의사가 되어서야 지쳐서 만난
아프리카 초원의 크고 못난 다리,
안을 수도 없어 어루만지기만 했는데
밀가루 같은 추억이 주위에 흩어졌어.

밤이 되는 열매와 야채가 되는 잎,
나이테도 아예 없애고 둥치만 커지는
주위로는 대여섯 개 문이 닫혀 있는데
안내원은 더위에 엎인 목소리를 뽑으며
이것이 아프리카의 수장(樹葬)이라고 했지.

  큰 바오밥을 만나니 무섭기보다는 목이 메인다. 둥치를 뚫고 나무에 구멍을 만들어 시체를 그 속에 밀어 넣고 판막이로 입구를 못질해 막으면, 열대의 초원에 우뚝 선 바오밥은 시체를 잠재워준다. 껴안고 녹여서 몇 해 안에 제 몸으로 받아들여준다. 못질한 막이도 어느새 구별되지 않는다. 천 년 이상 이렇게 사람을 안아주었으니 얼마나 많은 시체가 한 나무에서 살다가 나무가 되었을까.

나무가 되어버린 인간들은 
남은 살과 피로 열매를 만들며 
추억을 수액에 섞어 마신다.
인간이 나무 속에 들어가는 동네, 
잡초까지 이상하게 물구나무선다.
둥치의 긴 척추가 우리들의 날같이
귀환의 낮과 밤을 비추어준다.
축복처럼 아프게 행복하다.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은,

"왜 그렇게도 매일 외울 것이 많았던지
밤샘의 현기증에 시달리던 나이,"

"그 후에 가시에도 많이 찔리고
허방에도 많이 빠지고 
녹슨 못을 잘못 밟아 피 흘리면서 
창피한 듯 눈치껏 피해만 다녔지.
나는 그렇게 살아냈어. 너는?" (2연 전부네....)

그리고 맨 마지막의,
"축복처럼 아프게 행복하다."

여기. 


우리는서로부르고있는것일까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지은이 마종기 (문학과지성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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