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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빠진 독서

『뭐라도 되겠지』 - 김중혁

by 두번째낱말 2011. 10. 6.



1.
소설가 김중혁의 첫 산문집 『뭐라도 되겠지』(마음산책, 2011) 
와우북에서 사서(나오자마자!라고) 재미있게 읽었다.
재미를 넘어 정말 '웃긴' 책이다.
주의사항은 뭐 마시면서는 읽지 말것.
문장의 급습으로 입에 물고 있던 걸 뿜을 수 있음. (웃겨서)
이런 책은 한 700페이지 쯤 되면 좋겠다 생각했다.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게 아까웠어! 재밌어서! 
페이스북에 방울토마토 먹으면서 보다가, 방울토마토가 폭발해서 (토마토도 보다가 웃겨서 빵터진 거라고)
새 책에 튀었다고 썼는데, 그 덕에 "토마토도 웃기는 책", "맛있는 책" 등등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2.
예전에 2학년 땐가 소설론(맞나...?) 수업시간에 김중혁 조 발표날이었다. 
보통 PPT로 발표 하고 토론하고 하는 건데, 이 조의 조원 한 명이 발표 중 
"아, 저희가 이번에 소설가 김중혁 씨를 특별히 모시고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교실은 "우왓!"하며 술렁술렁 거렸고, 그렇게 나타난 김중혁 씨는.....

김중혁 얼굴 탈을 쓴 원 오브 팀원이었다. 교실의 "우왓!"은 "파하하"로 변했고. 
이때 이 조원들이 한 말이 김중혁 씨의 삶의 모토(?) 같은 게 
"아니면 말고"라고 했다. (지금도 그런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그 조가 조사해 온 바에 의하면)
이때 나는 이게 되게 마음에 들어서 거의 모든 걸 "아니면 말고"로 잔뜩 생각하고 다녔다.
'아니면 말고'
어느 날 문득 D와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다......."아니면 말고"의 너무 많은 남용은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아니면 말고"는 "아니면 말고"의 세계로 보내버리기로 결정했었지만. 
(아마 이때 나의 "아니면 말고"는 너무 짙은 책임회피성으로 이용되었던 것일까)

3.
아무튼 저 "아니면 말고"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 『뭐라도 되겠지』이다.
"아니면 말고"의 세계에 살지만, 무책임으로 이루어진 "아니면 말고"의 세계에 사는 건 아닌, 
가끔은 "오늘은 평소의 소설가 김중혁답지 않게 24중혁*이나 썼다."(99쪽)고도 얘기하는 사람의 이야기.
(*여기서 '중혁'은 원고 쓰는 양을 세는 단위로 1중혁은 소설가 김중혁 씨가 하루에 쓰는 원고량 0.5매를 기준으로 한다, 고 책에서 그랬다.)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박물관[각주:1]처럼 펼쳐놓는 이 사람의 이야기는 어떤 부분은 '짠'하고 어떤 부분은 '푸학'하게 만들고
어떤 부분은 '끄덕끄덕'하게 만든다. (아 이렇게밖에 설명 못 하는 내 표현력이 슬퍼서 나도 울고 키보드도 울고)
김중혁은 표지도 본인이 그리고, 속에 있는 그림도 직접 그렸다. 박물관같은 이 분은 재주(?)도 박물관인지, 그림도 잘 그린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타블렛......을 가져야 되는가...'같은 것.)

이 책은 자기소개로 시작하고, 시작부터 '푸학'하게 만든다.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내 이름을 치면 자세한 정보가 나온다. 사진도 나온다. 약력도 길게 적혀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지금 내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다. 친구들 자랑을 하려는 거다. 인터넷에 적힌 내 약력에는 결정적인 오류가 있다. 수상 내역에 미당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이라고 적혀 있는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시인에게 주는 미당문학상과 소설가에게 주는 동인문학상을 동시에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시와 소설을 동시에 쓰는 작가들이 있지만 그들도 어느 한쪽 활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 불가능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친구들 대문이다. 첫 책 『펭귄뉴스』를 펴냈을 때 기자 한 분이 이렇게 적었다. 

  소설가 김중혁 씨는 미당문학사오가 동인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시인 문태준과 소설가 김연수의 친구이기도 하다. 

어느 누군가 이 문장의 앞부분만을 읽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세상에! 미당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동시에 받았다잖아!) 자세한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내 약력을 세상에 내보낸 것이다. 하루빨리 프로필 수정 요청을 해야 하는데 귀찮기도 하거니와 함께 존재할 수 없는 두 개의 상을 나란히 있는 것도 보기 좋아서 아직까지 오류를 방치하고 있다. (12쪽)

여기에서부터 '빵' 터지고 시작했다. 그리고 어린 김중혁, 김연수, 문태준이 커서 "김중혁", "김연수", "문태준"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참 재밌고 세 분들도 신기하다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브라더에게 이 얘기를 하니 "우리도!!!"라고 외침.)


  얼마 전 모교의 국어국문학과에서 특강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1학년을 끝마치고 미래 불투명의 대명사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한 '무모한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거였는데, 처음에는 거절할까 싶었지만 문득 해주고 싶은 말이 생각나 승낙하고 말았다. 갔더니, 떨렸다. 처음 해보는 특강이 아니었는데, 무지하게 떨렸다. 내 앞에 스무 살, 스물한 살 대학생들이 앉아 있었고, 그들은 젊어서, 어려서, 아름다웠다. 충고는 무슨, 그냥 놀아요, 라는 한마디만 하고 후다닥 일어나 돌아오고 싶었으나 그래서는 안 될 자리였으므로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22쪽)

(그림은 21쪽)

이 부분은 내가 국문과라 또 웃었던 부분.
예전에 재수할 때 담임 선생님이 국문학을 전공하신 언어 선생님이었다.
재수 때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국문과는 굶는과. 가지마." 하셨는데, 
삼수도 하고 대학도 가서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만났다.
당시 인문학부 학생이었던 나는 "선생님! 저 국문과 가려고요!" 라고 했고,
선생님은 여전히 "가지마."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무튼 나 "불투명의 대명사"인 국문과 안 갔으면 큰일 날 뻔했지.

다시, 김중혁으로. 아래 부분은 기타리스트(?)로서 내가 또 무지 공감했던 부분.
통기타를 배우면 꼭 '너의~침묵에~'를 거치게 되는 건가. 딱히 아는 노래도 아닌데, 이 노래는 이상하게 안다. 

중학교 때였는지 고등학교 때였는지 모르겠다. 부모님을 졸라서 기타를 샀다. 당연히 싸구려 기타였고, 어쩔 수 없이 어쿠스틱 기타였다. 나는 신대철과 김도균과 김태원처럼 기타를 치고 싶었다. 그들은 김천이라는 작은 도시에 사는 무명의 기타리스트 지망생에게는 전설이었고, 기적이었다. 나는 손가락 끝이 돌덩이가 될 정도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서 김천에서만큼은 알아주는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전기 기타가 아닌 어쿠스틱 기타로 연습을 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독학을 해서 그런 것인지, 결국 재능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지금처럼 그때도 핑계 대는 실력만 좋았던 탓인지, 기타 실력은 좀체 늘지 않았다.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만 메마른 입술이 부르트도록 불러대는 바람에 친구들로부터 침묵을 강요당해야 했으며, 결국 기타리스트의 꿈은 포기하고 말았다. (102쪽)

이것이 진정 "아니면 말고" 인가. (ㅋㅋ)


4.
"뭐라도 되겠지"라는 생각. 하루하루를 꼬박꼬박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순간에는 잘 하기 힘든 생각. 
하지만 좀 필요한 순간인 것 같다. 너무 불안해 하지 않아도, "뭐라도" 될 것이고 또 "뭐라도 되"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그렇지만 나도 뭐 매일 불안해하지만. 

종종 선택하여 집은 것 보다, 못 집은 것을 더 많이 바라보게 될 때가 있다. 
하지만 이왕 선택했다면,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 것들은 아닌 것들이라 생각하고 "아니면 말고"의 "말고"의 세계로 넣어 놓기. 그렇지만 내가 잡은 것에 대해서는 좀 더 마음 많이 쏟기. 
혹 또 잡은 것이 아닌 것 같다면, 그것도 "아니면 말고"의 "말고"로 보내면 되니까. 
수많은 "아니면"과 "말고"를 거쳐 "뭐라도"의 세계로 가는 일.  
"뭐"의 세계는 얼마나 풍요로운가. 정말 "무엇"이든 다 될 수 있으니. 
(이건 마지막 말은 내가 믿고 싶은, 지금의 나를 위한 말이기도 하다.)

이 작가가 어느 날 모 밴드의 리더를 만나서 묻는다. 

밴드의 목표가 뭐예요? 그는 우물쭈물 하다가 목표가 없다고 했다. 그냥 음악을 할 뿐이라고 했다. 대답을 듣고 내 질문을 후회했다. 어째서 목표 따위를 물었을까. 예술에 목표 같은건 없다. 집중을 요구하는 권이나 군에는 뚜렷한 목표가 있겠지만, 마음이나 예술에는 목표가 없다. 마음을 기록하는 예술은, 그러므로 산만한 자들의 몫이다. (157쪽)

이래저래 산만하게 열심히 "아니면"을 거쳐 나아가길. 
쓰기도 지루한 표현이지만, 정말 누구나 다 스스로의 삶에 있어서는 예술가니까. 
"뭐라도" 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으니까. 

어쨌거나 "뭐라도 되겠지" 





(아니면 말고)


+
아 이거 말고 체크해 놓은 부분이 더 있지만, 옮겨 쓰기 너무 힘들어서 생략. 




뭐라도되겠지호기심과편애로만드는특별한세상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김중혁 (마음산책,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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