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할 일
읽고 싶은 것, 읽어야 할 것,
공부해야 할 것, 외워야 할 것,
써야 할 것, 마무리 지어야 할 것,
찾아봐야 할 것, 또 읽어야 할 것, 다시 또 써야 할 것, 보내야 할 것.
둥둥 떠다니는데
뭘 먼저 해야할 지 몰라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있거나 저기에 전혀 포함 안 되는 것을 했다.
2.
기억나지 않는 어떠한 결심의 순간 이후로
요즘 너무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3.
블로그에 담고 싶은 글도 있지만,
손으로 꾹꾹 적어놓고 싶은 글도 있다.
늘 새 다이어리를 사면 좋아하는 시를 적어놓는 것.
마음에 드는 새 일기장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 스케줄러 형식의 다이어리는 올 해는 이제 그만........)
4.
어찌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지금 생각나는 시는
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 지성사, 2008)
이것만 눌러 쓰고 '마무리 지어야 할 것'으로 가겠다.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 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은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하다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밑줄 그어 놓은 부분은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심보선의 새 시집이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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