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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빠진 독서

바람의 말 - 마종기

by 두번째낱말 2012. 10. 14.



바람의 말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마종기,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문학과지성사, 1980




원래 마종기 시인의 다른 시집을 사고 싶었는데, 

없어서 이걸 샀다. 가끔씩 떠오르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라는 말.

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서, 

'사랑의 나라'는 소중하니까 안 보이는 걸까. 


아득하게 닿을 듯 아련하게 그리워만 하는 사랑의 나라.

마지막 연이 진짜 좋다. 


마종기 시인의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의 표4를 좋아하는데(아마도 그 시집 맞을 듯),

젊은 시인일 때부터 이 마음을 담아내셨구나.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내가 행복한 것 잊지 말것.


좋아 보이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잘 잡을 것.

중심을 잃지 말것.



다시 한 번,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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