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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매일

기타

by 두번째낱말 2011. 11. 20.



몇달 전에 요즘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 두 가지, 혹은 나를 이야기 할 수 있는 두 가지를 적어야 했을 때가 있었다. 아주 작은 종이 두 개 중 한 개에는 '문학'이라고 적고 나머지 한 개에는 '기타'라고 적었다. 사실 '시'와 '기타'라고 적고 싶었지만, "시를 좋아합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내겐 좀 고백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좀 에둘러 '문학'이라고 크게 적었다. (뭐 맞는 말이기도 하니까. 소설도 좋아해요. 시를 더 좋아하지만.) 

갑자기 이게 생각난 건 어제 덕분에. '문학'이나 '시'말고, 두 번째 단어인 '기타'.

어제는 아주 오랜만에, 예전에 기타 배웠던 곳의 연말 공연에 갔다. 브라더와 내가 기타를 배웠던 공간은 매달 한 번 씩 정기공연을 하고(연습실에서), 매 해 연말에 아주 크게 공연장을 대관해서 공연을 한다. 나의 소개(!)로 이 곳에서 기타를 배우고 있는 은정언니와 함께 '올해의 연말공연'에 갔다. 사실 언니가 이번에 공연을 할 지도 모른다고 해서 더 신났었는데, 언니가 이번 주에 너무 바빴던 나머지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여 안 올라갔다(그냥 올라가지!). 언니의 공연은 없었지만, 둘이서 맨 앞 줄에서 나란히 공연을 즐겁게 보았다. 

오랜만에 본 곳은 또 다르고 여전했다. 약간 다른 사람들이 여전한 나무 기타 소리의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더 많은 새로운 사람들 속에 꾸준한 분들도 꽤 계셔서 반가웠고 익숙했다. 공연이 끝나고 밥을 먹으며 기타를 안고 있는 사람들과 기타 이야기와 기타 아닌 이야기를 했다. 

어제 새삼 좋았던 건, 그래도 나랑 브라더를 생각해주는 우리반 선생님.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완전 애기 때 배우러 왔었어요. 내가 업어키웠지(...언제?). 얘 기타 진짜 잘 쳐요. 아마 얘가 제일 잘 칠 걸? 다시 배우러 와! 네가 좀 가르쳐라! 브라더 데리고 양재로 놀러와(밥 먹자고)." 이라는 아주 몸둘 바를 모르겠는 소개와 칭찬을 주셨다. 쑥스러우면서도 좀 좋았다. 선생님이 내 기타 실력을 까먹었나, 싶은 생각이 잔뜩 들었지만. 

무대 위에서 기타를 치는 사람들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도하고 또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생각을 했다. 그래도 나도 놓지 않고 계속 치고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그리고 또 새삼 내가 처음에 우리반 선생님께 기타를 배워서 이렇게 기타를 놓지 않고 치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했다(브라더를 만나서 꾸준히 즐겁게 치는 건 더 당연한 거고 감사한 거고).

선생님은 기타를 좋으라고 치는 것이다라 생각한다. 언니가 "연습을 많이 못해서 못 올라가겠어서요."라고 이야기 했을 때 "그런 게 어딨어. 그냥 올라가도 돼. 그냥 다 좋으라고 하는 거지."라는 이야기를 했다. 딱 그만큼만. 좋을 만큼만. 뒤풀이에서 나와 집근처에 도착해서 걸었다. 걸어가며 계속 생각한 것. 무리하지 않고 좋아할 만큼 만 좋아해도 되는 것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열심'과 '치열'을 갖고 해야하는 '일' 속에서 약간 긴장을 놓고 '하고 싶은 만큼 만'이라는 것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가.  

오랜만에 본 SW(소프트웨어 아님)언니가 나와 브라더의 옛날을 이야기해줬다. 우리가 연습실에서 기타를 들고 밖으로 나가며 "돈 벌어 올게요."라고 했다고. 그게 되게 부러웠다고. 장난스럽게 "얼마나 벌었어요?" 하며 더 궁금해하는 옆에 분의 질문에 "하하. 그때 돈은 안 벌었지만, 저희는 여전히 지금도 밖에서 기타 쳐요."하는데 이것도 또 좋았다. 지금도 노래해요. 

잘 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만, 너무 애써 무리하지 않기로. 지금처럼 좋아하는 노래 부르고, 행복할 만큼 만 치기로. 이건 언제나 내게 부담이 아닌 위로가 될 수 있게. 자꾸 사라지기만 하는 것 같을 때 늘 여전하게 있어주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고마운 것. 

생각보다 더 많이 불안한 날들이다. 아직까지도. 여유가 조금 생겨도 될 텐데 생각도 들지만. 그렇지만 불안한 것은 불안한대로 그대로 내 마음을 기다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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