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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매일

2010 - 2 명작명문 한 조각.

by 두번째낱말 2011. 7. 15.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명작명문 수업에서 쓴 것인데.

예전에 페이스북 노트에다가 올렸던 것 중 마지막 부분만 다시 갖고 왔다.
페이스북에 올린 날짜는 2011년 3월 29일. 
수업을 들은 건 2010 년 2학기. 

이 글은 "정미경은 그녀의 소설 에서 사랑의 비극은 그 비동시성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사랑이라는 것은 늘 동시적이고 동질량이길 바라지만, 바람 같지 않은 현실에 그 비극은 시작된다." 라고 하며 시작했는데, 
방청소를 하다가 저 말이 담겨 있는 정미경의 <밤이여, 나뉘어라>를 봐서 갑자기 저 글이 생각이 나서.

  운명이라 믿던 사랑에 상처받더라도 사람은 또 다른 운명을 만나고 또 다시 각자의 사랑을 쓴다. 이처럼 보이지도 않으며 다양한 모양으로 각자에게 드러나는 사랑을 과연 이렇게 글로 쓸 수 있는 것일까.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되도록 사랑에 관해서는 쓰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사랑을 이야기하기엔 ‘젊은 시인’은 너무도 섣부르고 이미 앞선 분들의 ‘잘 쓴 것’들이 많기 때문에, 사랑에 관해서는 ‘정말 잘’ 쓰지 않으면 진부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에 관하여 쓰는 것은 릴케의 말처럼 자칫 잘못하면 진부하고 평범하게 되기가 쉽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주 예술 속에 사랑을 담는 것은 그것은 평범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더 선명하고 확실한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의 비동시성에 상처받더라도 또 다른 사랑 속에서 사랑이 주었던 비동시성의 비극은 치유되며 사람은 스스로를 더 빛나게 할 수 있는 현재와 진심의 힘을 다시 갖게 된다. 이러한 것이 언젠가 비동시적이 되어 상처 받게 되더라도, 우리가 사랑을 하는 이유 그리고 그 사랑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뭐, 릴케가 담겨 있어서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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