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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빠진 독서

<변신> - 프란츠 카프카

by 두번째낱말 2011. 10. 17.


1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벌렁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약간 들자, 활 모양의 각질로 나뉘어진 불룩한 갈색 배가 보였고, 그 위에 이불이 금방 미끄러져 떨어질 듯 간신히 걸려 있었다. 그의 다른 부분의 크기와 비교해 볼 때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앞에 맥없이 허위적거리고 있었다. (9쪽)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벌레로 변해있다면. 

'가족'은 완전한가.
예전에 <가족사회학>수업에서 선생님은 '가족'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운명적으로 부여받은 것이기 때문에 더 폭력적일 수 있다고 하셨다. 내가 애써 선택한 것에도 불만족과 혼란이 올 수 있는데, '가족'은 바꿀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거니까. 대단히 견고한 둥지로도 불리지만, 어찌보면 그 견고함이 파괴할 수 없는 폭력으로 닿을 수도 있는 것이 가족이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어찌 할 도리 없는 '운명', 이 양면을 다 갖고 있다는 게 가족의 불가피함일 수도.

'가족'에 대해서는 완전하지 않음을 타인에게 굳이, 애써 밝히지는 않는다. 차라리 나만 알고 말지. 
그레고르 잠자의 가족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에게 오빠가, 아들이 '벌레'가 됐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아 한다. 창피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우리' '가족' 안의 일에 개입하여 '좋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 또한 불쾌한 일이기도 하니까. (가족은 '제 얼굴에 침뱉기'와 '까도 내가 까'의 세계일까.)

하지만 그레고르 잠자를 꽁꽁 숨길 정도로 보호해주지만, 그리 가까이 가고싶어 하진 않아 한다. 그나마 동생이 '오빠'라는 이름을 붙들고 먹을 것도 넣어 주고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아들'이라고 인식하는 정은 사라진 것 같다. 어머니는 약간의 절절함이 있지만 그레고르의 여동생이 엄마가 오빠의 모습을 보면 충격에 빠질까 굳이 마주치지 않게 한다. 어찌보면 어머니의 마음도 '벌레가 된 너의 모든 것을 받아 들일 수 있다.' 까진 아니었던 걸까. 

가족의 수입원이었던 그레고르 잠자는 수입원이 사라진 후 '황폐해 진듯'한 가정 안에서 점점 벌레가 되어간다. 벌레지만 인간인 그레고르 잠자는, 점차 인간이지만 벌레로 굳어간다. 죽는 순간 진짜 가족 안에서, 사회 안에서 타자화된 벌레로 변해버린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의 그를 마주하는 건 가족도 아닌 가정부다. "죽었어요."도 아닌 "뒈졌어요."라는 거친 언어와 함께. 

그가 변하고 '황폐해 진듯'한 집은 사실 그렇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와 동생이 다시 일을 해야 했으나, 그것이 놀랍게도 생기로 이어졌다. 삶을 근근히 이어가기 위한 지난한 일이 아니었던 거다. 오히려 아버지는 이전보다 더 번뜩이는 옷을 입고 계셨다. 그레고르 잠자가 없어도, 가족은 사실 잘 돌아갔던 것이다. 

그레고르 잠자에게 가장 많은 애정을 보였던 여동생은 마지막 순간에 벌레를 보고 "저게 무슨 오빠예요!"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저 벌레 오빠 아니라고, 저 벌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힘든 거라고. 진작에 사라졌어야 했다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가족이라 더 힘들었던 것이다. 가족이기에 도망가지 않았지만, 그 도망갈 수 없음이 더욱 힘들게 했던 것. 결국 그레고르의 여동생은 벌레에게 정성을 쏟았던 스스로의 지난 날과 그 벌레를 부정하면서 자기의 '지금의 삶'을 택한다.

철처하게 모든 이에게서 타자화된 그레고르는 결국 등에 사과가 박힌 채로(이건 아버지가 던진 것이다) 죽는다. 그레고르는 진짜 벌레가 되고, 그레고르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즐겁게 함께 살던 집을 떠나면서 끝이 난다. 떠나는 것은, 그들은 웃고 있었지만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웃지 않으면 살 수 없기에, 그를 부정하지 않고서는 '사회'로 주어진 '생활'을 걸어 나갈 수 없기에 어떻게든 웃으며 벗어나는 것이라고 보았다. "오빠가 아니고 벌레다"라고 했지만, 그게 오빠였기 때문에 그가 사라진 채로 원래 있던 공간('오빠'가 있는 관계 안에 얽혀 있는 사회) 안에 있을 수는 없는 거니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적인 '사랑'과 같은 포용력을 강요한다는 것이 폭력적이다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이니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또 사실이다. 그 '가족' 안에서도 완전히 타자화 될 수밖에 없었던 그레고르의 이야기. 그러니까 '가족'은 완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 

결국, 고독한 거다. 



+ <변신> 읽다 생각난 진은영 선생님 시 한 편 


가족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2003, 문학과지성사


+ 그런데 왜 벌레인가, 에 대해서는 안 썼네. 음. (2011. 10. 19)


변신시골의사(세계문학전집4)
카테고리 소설 > 소설문고/시리즈
지은이 프란츠 카프카 (민음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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