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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빠진 독서

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또!)

by 두번째낱말 2011. 10. 28.

1.

형철 님 얘기는 요새 진짜 많이 쓴다. 그만큼 내가 아끼고 아끼고 있는 분.
<몰락의 에티카> '책머리에'에 반했던 것처럼, <느낌의 공동체>의 엄청난 '책머리에' 소개. 

(* 강조는 내가)

"사랑할수록 문학과 더 많이 싸우게 된다. 사랑으로 일어나는 싸움에서 늘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는 잘못을 저지른 쪽이 아니라 더 많이 그리워한 쪽이다. 견디지 못하고 먼저 말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 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진다. 나는 계속 질 것이다." (12쪽)

윽. 계속 질 것이다. 
"원고를 1년 넘게 붙들고 있다보면 이따위 책은 내지 않는 게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몇 번은 온다. 그럴 때마다 손을 잡아주는 편집자가 곁에 있다는 것은 그 책의 행운이다. 그 편집자가 나의 소중한 친구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실은 더 고마워서 가끔 젖은 눈이 되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한 번도 들키지 않았다. 책을 만들어준 김민정 시인에게 감사한다. 삶의 어느 법정에서건 나는 그녀를 위해 증언할 것이다."(13쪽)

안타깝게도 한 번도 들키지 않았다, 에서는 폭소. (여기에서도 또 드러나는 사려깊은 개그욕심) 
그리고 "삶의 어느 법정에서건 나는 그녀를 위해 증언할 것이다." 이 부분은 진짜 찡한 감동. 그리고 왠지 신 평론가는 이 문장을 쓰고 좀 뿌듯해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진심 담은 멋진 문장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은 글 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소중하고 기쁜 일. 그리고 그런 문장을 선물할 수 있는, 그 문장을 '진심'으로 읽어 줄 친구가 있다는 것은 더욱 더 말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한 일일 것이다. 나도 언젠가 내 마음 담은 내 문장을 나의 친구들에게 선물할 수 있다면 좋겠다, 는 바람을. 

"어떤 사람이 신탁을 내리는 아폴론이나 범인을 지목하는 테이레시아스가 될 수 없다면, 그것은 그가 바로 오이디푸스 이기 때문이다.기소와 선고를 위한 문장을 쓰고 나면 나는 거의 고통스럽다. 그러니 나는 결함이 많은 비평가인 것이지만 내 글은 내 실존의 필연이니 앞으로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도리 없이 내가 겨우 할 수 있는 일이나마 가슴이 아프도록 잘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13-14쪽)
이거 읽고 오이디푸스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나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그러니까 '눈 뜬 채로 못 보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늘 생각할 것. 스스로를 제일 경계할 것(!).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미망을 오래전에 버린 것처럼,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는 글을 쓰겠다는 허망도 이제는 내려놓고, 그저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나 자신을 더 삼엄하게 학대하려고 한다.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14쪽)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거의 전부. 


2.

시인에 대해서도 쓰고, 시집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세상에 대해서도, 글에 대해서도, 음악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책. 평론은 평론이고, 산문은 또 산문이다. 산문도 예쁘게 쓰신다. 

밑줄 그은 것들 몇 개. 

위에 옮긴 "삶의 어느 법정에서건 나는 그녀를 위해 증언할 것이다."라는 말 속의 "그녀"인 김민정 시인에 대해서 말 한 글.

"우리가 차마 못한 말을 그녀는 한다. 이 솔직함은 포즈가 아니라 불가피한 전략이다. 위선적이지 않은 권력은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전에는 '솔직히 말하면'이라는 관용구가 없다. 솔직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는다. '서정적'이지 않다고? 그러나 분명히 '시적'이다."(30쪽)


얼마 전에 여기에 김민정 시인 시 적어 놓은 적도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거! 

문태준 시인 란에서는 "서정시는 아름다운 말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말을 아름답게 쓰는 것이다."(37쪽)라고.
문태준을 "다정증 환자"라고 말하고, 우리가 살아야 되기 때문에
"그는 낫지 마라. 그래가 우리가 산다."(39쪽)
라고도 한다. (동감!)

진은영 선생님에 대해서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두번째 시집이 나올 대가 되었는데 소식이 없다. 시인은 시만 생각하지 말고 기다리는 사람 생각도 해야 한다."(55쪽)
이라는 명언을. 여기도 동감! 시인은 시만 생각하지 말고 기다리는 사람 생각도 좀 하기. 아, 진 쌤의 두 번째 시집 나오기 전에 쓰인 글이라고 한다.

읽어보고 싶은 시인으로 성미정 시인. 얼마 전에 문학동네에서 새 시집 나왔는데, 챙겨봐야지. 시가 정말 재미있다!
그리고 허수경 시인! 
여기서 밑줄 그은 부분은
"문학이 희망을 줄 수 도 있을까. 문학은 절망적인 세계 앞에서 사력을 다해 절망할 수 있을 뿐이지 않은가."(97쪽)


심보선 부분의 마지막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게 사랑이지만, 더 많이 아파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 시다."(127쪽)


김소연 시인과 권혁웅 시인에 대한 이야기 중.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 권혁웅 시인의 <두근두근>을 가지고.)
"두 사람의 공통점 하나를 말하겠다. 좋은 문장에도 등급이 있다. 좀 좋은 문장을 읽으면 뭔가를 도둑맞은 것 같아 허탈해진다. '아이쿠, 내가 하려던 말이 이거였는데.' 더 좋은 문장을 읽으면 뿌연 안갯속이던 무언가가 돌연 선명해진다. '세상을 보는 창 하나가 새로 열린 것 같아요.' 더더 좋은 문장을 읽으면 멍해진다. 그런 문장을 읽고 나면 동일한 대상을 달리 생각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그 문장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제 더이상 할 말이 없어요.' 이런 문장, 두 사람의 책에 매우 많다."(292쪽)

3.

뭔가 건방지지만(!) 진짜 부럽다. 와. 이렇게 쓸 수 있으면, 이렇게 많이 알고 있다면 뭔가 되게 뿌듯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형철 님에 대해서 엄마랑 이야기하다가, 

나 : 엄마, 신형철 평론가는 아침마다 뭔가 되게 뿌듯할 것 같아. 
엄마 : 왜? 
나 : 그냥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와!!!!! 나 완전 똑똑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이라 좋다!!! 와!!! 나 멋있다!!!"
      생각이 들 것 같아!!! 
엄마 : 에이....그럴 사람 아닐 것 같은데...
나 : 맞아, 그럴 것 같긴 해. 이런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더 많이 다그치려나. 

이렇게. 뭐 아무튼 부러웁고 부러웁고 부러워서, 부러워했다. (그저 그런 결론...)



느낌의공동체신형철산문2006-2009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신형철 (문학동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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