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 d에게 한 말이기도 한데. 프로레슬링은 다 짜여진 각본대로 하는 쇼라고 한다. 때리는 척과 맞아서 아픈 척.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해야할 것은 맞는 사람은 아픔을 참으면 안 된다는 거다. 아픈 걸 참고 소리지르지 않으면, 안 아픈 거라 생각하고 더 과격한 액션에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아플 때 아프다고 소리지르는 게 필요해.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
이성복 시인의 어떤 시집이더라. 아프다는 것은 건강한 거라고 했다. 어찌 되었든 살아있음의 감각. 생의 감각이라고. 마음이야 어떻든 머물다 사라지는 것엔 속수무책인 이런 순간도 살아있음의 감각으로, 어찌보면 건강한 나인 거다. 오늘 자고 나면 난 괜찮을 거다. 아마도.
2.
며칠 전에 미나랑 복도를 걷다가, "나이 들어 좋은 건 뭘까"라는 이야기를 했다. 굳이 꼽자면.
1) 애써 미워하지 않는 것 - 싫어하는 것이 좀 적어졌달까. 물론 좋아하는 것도 좀 더 선명해졌지만. 굳이 화내는 것이 줄었다는 것.
2) 관용도가 조금은 높아졌달까 - 1)이랑 비슷한 것인데, 웬만한 일에는 '그럴 수도 있지'생각한다는 것. 그런데 이건 관용도가 높아진 것일까 아니면 무관심일까. 예전에 무관심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d의 글이 생각.
어찌 되었든, 정말 d의 말처럼 이렇게 돼서 얻는 건 뭘까. 어른 돼서 얻는 거. 관용도가 높아진 건지, 무관심인지, 아니면 그냥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주저하게 돼서, 감정을 잘 숨길 줄 아는 사람이 된 건지.
건강한 감정 표현이 그립다.
화만 내는 할머니가 아니라, 건강하게 스스로의 의견과 감정을 말하는 순간이 그립다는 것. 나는 너무 많이 자랐나.
3.
안 좋을 때 결국 말하지 못하고는 못 버티나. 아직 이야기를 찾아서 괜찮아지는 내가 다행이지만, 어찌 되었든 스스로 좀 더 잘 버티는 사람이면 좋겠다. 주변 사람들 괴롭히지 말고.
4.
안 원장님이 그랬다(티비에서).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있는 사람만이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나는 사실 저렇게 말하는 걸 두려워한다. I may be wrong.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좀 더 내게 자신이 생길 때쯤.
가끔 준쌤을 보고 '와-'하게 될 때가 있는데, 선생님은 꽤 관용도가 높은 사람이라는 것. 결과를 당연히 안 중시 하시는 건 아니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실수나, 서투름에 관대하시다.
아까 2번에서 그래서 좋은 게 뭘까, 라고 했지만 그래도 관용도 높은 사람은 되고 싶다. 그냥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인 것도 크지만, 왠지 관용도가 높은 사람이면 관대하니까, 막 화나는 일도 적고 그럴 것 같아. 나에게도 진짜 좋을 것 같은데. 좀 더 잘 참는 사람. 뭐 이런 거, "그냥 화가 안 나."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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